마음의 힘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 인간은 별도의 보조수단없이는 기억과 사고 그리고 추론에 모두 한계가 있다. 다만 인간의 지능은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사용법이나 절차를 만들어내는 데 특히 탁월하다. (중략) 소크라테스는 책이 사고를 해친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가 중요하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파악하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문 제기와 파악은 반성적 사고의 도구이다. 책 속에는 저자기 들어가 있을 수 없으니 의문을 제기한대도 어떻게 책이 대답하겠는가? 바로 이 점이 소크라테스를 괴롭힌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물을 깊게 생각하는 능력 모든 상태를 검사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반성적 사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필자는 작은 취미로 걷기를 시작하였다. 어느샌가 성취를 이루는 일이 없어졌고 단순한 성취욕을 이루기 위한 가장 빠른 수단인 지출을 활용하여 삶을 이어가면서 점점 나의 삶이 피폐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돈을 축내는 삶은 나를 더 절망으로 가져가기만 했고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나는 작은 성취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필자가 평소 좋아하던 걷기를 활용한" 걸어서 서울 속으로" 라는 프로젝트로 단순히 주말 동안 5km 되는 거리를 그저 걷는 것이다. 주변에 오래된 노포를 방문해서 점심을 먹고 시작하게 된다. 별 특별한 이야기가 없지만 새로운 공간, 사람들에 대한 관찰들을 하며 영감을 얻는 작업들이 수반된다.
필자는 여느 어머니과 같이 "우리 아들은 늘 머리는 좋은데 행동하지 않는다" 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다. 그로인해 나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때마다 머리는 좋다는 핑계로 무엇이든 미루게 되었고 성적은 빠르게 떨어졌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때 개인적인 사유로 공부하게 되었고 1년만에 모의고사 점수 수직상승하여 내 분에 넘치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경험이 나에게 독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때 나는 머리가 좋을지 모른단 생각을 맹목적인 믿음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무슨일을 할때에도 늘 머리가 좋다는 핑계로 미루는 일이 더 많아졌고 배우는 순간에 조금만 이해되도 다 알았다는 듯한 행동을 취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친구들과 격차가 나는 걸 보면서 나는 ..
필자는 대학시절 유튜브처럼 개인의 글을 올리고 이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에 대해서 고민해본적있다. 하지만 두려움이 앞선 나머지 실행은 하지못했다. 퍼블리는 작가들이 쓴글을 매달 소정의 금액을 받는 수익모델로 창출한 플랫폼이다. 필자가 창업을 하진 않았지만 왠지 필자의 방안이 맞는 방향이였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며 과감히 6개월 결제를 신청했다. 주로 필자는 이동시간/빈시간에 이 플랫폼을 활용하는대 오늘 읽은 흥미로운 내용을 공유하고자한다. 바로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 라는 컨텐츠다. 정재혁이라는 저자는 현재 씨네21주간지에서 근무하고있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일본 잡지를 본 경험을 살려 BRUTUS 와 POPEYE 에 담긴 기획력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필자 또한 일본의류를 좋아해 오래전부터 POP..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줬다. 기술을 통해서 우리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더 명확하게 사고하게 되며, 더 정확히 정보에 접근하게 되었다. 심지어 시간적 공간적 제약조차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 때문에 우리의 삶은 도태 될 수 도 있다. 텔레비전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고 뉴스는 단순히 몇 백자로 내용을 쏟아낸다. 긴 기사라고 할지라도 복잡한 요약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인공물들은 사람을 즐겁게는 해주지만 현명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인지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물질적인 것들과 정신적인 것들을 꾸준하게 발명해왔다. 컴퓨터와 같은 것들은 인간의 인지활동을 돕는 물질적인 인공물이다. 다시말해 인공물에 대한 기술은 인간 지식과 정신적인 능력의 확장에 ..
저희집은 여느 대한민국가족처럼 엄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아버지로부터 자유를 빼앗긴 삶을 살았습니다. 늘 아버지가 하자고 하는대로 했었고 반항심이 불타오르기도 했지만 야구를 하셨던 아버지의 체력과 힘은 나이가 들어도 약해지지 않으셨고 저의 반항심은 마음속에서만 끓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아버지의 힘은 저는 자유를 얻고자하는 반항심 가득한 마음은 공부의지로 승화되었고 고향 광주를 떠나 홀로 저를 서울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순간의 자유 맛은 롯데리아 데리야끼버거처럼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늘 자유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지시에 맞춰 어느 틀에 갇히지 않고 제가 원하는 취향을 설계하고 하나씩 채우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식당, 집 ..

안녕하세요. 평생을 뚜벅이로 살아온 김겐입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학교/회사로부터 늘 버스/지하철 타기에 애매한 위치를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늘 조금 더 걷는 습관이 생겼고 나름의 작은 취미로 하루에 15,000보 정도는 걷고있어요 (아이폰피셜) 제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지만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생각정리" 에요. 하루종일 누군가에게 시달려 정신 고단할때면 저는 목적지 없이 걸어요. 그럴때면 머릿속 실타래가 느슨해져 어느새 가지런히 정리될때가 있거든요. 가족 간의 문제, 연인과의 문제, 직장상사와 문제까지 우리는 늘 문제들 속에 쌓여있고 문제와 문제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거릴뿐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럴때면 아무생각없이 멍하니 걷고나면 왠지 한결 가벼워지고 문제..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저는 고민해서 쓴 글이 남에게 읽힐 때면 늘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제 글이 울려퍼질때면 제 못난 부분이 남에게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중학교시절 국어 선생님이 제가 제출한 2,000자 과제를 보시고는 글쓰기 대회를 추천하셨어요.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자신감을 가지고 참가한 대회에 저는 예선 탈락을 하게 되었고 글을 못쓴다는 생각을 더 확고하게 갖게 되었어요. 그 후 저는 글과는 영원히 무관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데 29살 나이가 되어 창업을 시작하려다 보니 글쓰기가 필요하게 되었네요. 제 신상을 밝힐 필요없는 곳이라는 건 가끔은 편리해요. 제 목소리가 퍼지더라도 고개를 푹 숙일 필요도 없거든요. 오늘 티스토리 시작이 저에게는 스몰 스태프로 제가 원하는 곳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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